한상정, 『만화학의 재구성』, 이숲, 2021
(22.01.02~22.01.04)
2장. 만화의 정의
1. 만화라는 표현형식을 정의하는 다양한 입장
: 한국에서는 가장 대표적인 논의로 알려진 스콧 맥클라우드를 비롯해 여러 학자들의 정의를 가져와 비교 분석하며 타당성을 따진다. 맥클라우드가 만화를 정의하는 과정에서 라스코 동굴벽화를 가져온 것이 "저급한 것으로 취급받는 예술형식을 합법화시키려는 욕망으로 인해" "근대적 매체를 몇천 년 전통의 시각적 표현과 혼동"(티에리 그로스틴)한 것이라는 지적은 통쾌할 정도로 온당한 지적이었다.
그 외 경유한 여러 학자들이 또 있었는데, 주지할 것은 완전히 맥클라우드 논의에 치우쳐 있는 한국의 논의가 얼마나 빈약할 수밖에 없는지. 이미 너무 오래된 논의고 그게 아니어도 하나로 고정된 논의는 허점이 많을 수밖에 없다. 다만 이 책에서 인용하는 만화의 정의 역시도 전부 1990년대에 머물러 있어 아쉽고(오히려 정의기 때문에 고전이면 그만인 걸까? 아직도 소설의 이론을 보는 것처럼) 번역서도 없는데 과연 어떤 참고문헌들에 어떻게 접근해야 하나 고민이 된다.
그래도 역사성을 초월한 정의를 만들어내기보다, 근대에 발생한 최초의 만화를 정의한 뒤 그 역사적 변천을 추적하고 최종적으로 여전히 지속되는 특징을 만화 정의를 위한 고유한 특성으로 추출해보자는 논리는 아주 동의할 만해 보인다.
2. 만화라는 표현형식의 '역사적' 정의
: (일단 참고할 만한 문헌이 많아 보인다. 근데 고민되는 게, 석사논문은 얼마나 멀리까지 가서 참고문헌을 끌고 와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것..)
"연쇄적 칸의 상호의존성, 텍스트를 활용하는 이미지 서사, 광범한 보급과 표준화에 이바지한 일간신문이라는 매체를 활용할 것, 마지막으로 말풍선을 가질 것"(40쪽). 개인적으로는 만화의 텍스트와 이미지가 완전히 결합돼 뗄 수 없을 만큼 긴밀한 상관관계를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무언 만화조차 무언이 무가 아니라 공백에 가깝기에 언어를 전제하되 빈자리로 남기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독자 입장에서 봤을 때 이미지 서사로 받아들여질 것 같긴 하다. 만화에서의 문자는 이미지적 특성을 갖는다는 것을 그 근거로 삼은 논리도 그럴싸하고.
대중예술작품으로서 자리 잡는 길목에 일간신문이라는 매체를 삽입한 것은 아주 중요한 지적인 것 같다. (실제로 그 매체의 보급으로 인해 만화가 어떻게 변화했는지는 더 찾아볼 필요가 있다.) 이 지적이 중요한 건, 만화를 논하기 위해 매체를 전면에 세웠기 때문이다. 출판만화와 웹툰에 관한 논의를 시작하기 전에도 매체 논의의 중요성을 납득시키는 것이 선행될 필요가 있다.
3장. 한칸만화와 캐리커처
1. 카툰과 한칸만화
: 2장에서 저자가 쌓아 올린 논리 안에서 대상을 접근한다는 점에서 내용 자체보다도 논리 구조가 돋보였다. 주목할 것은 1700, 1800년대의 도판들이 그 외형이 완벽하게 만화의 그것을 하고 있음에도(그림과 말풍선) 대량 생산 가능한 매체라는 조건을 충족하지 못해 만화가 아닌 삽화로 구분하는 부분이다. 대량 생산이 어려운 만큼 이러한 형식의 작품을 읽어내는 능력이 대중에게 형성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인데, 이는 곧 매체 고려가 독자 대중 고려와도 맞닿아 있음을 보여준다.
2. 한칸만화의 탄생에 필요한 조건과 본질
: "단일한 칸의 자기 완결성"(59쪽). 1장에서 논의의 초점을 다칸만화로 잡고 간다 했고 2장에서 정의한 내용은 이를 따른 것인데, 다칸만화 논의를 본격화하기 전에 한칸만화를 잡고 가는 것 같다.
4장. 만화의 사전(事前) 형태
윌리엄 호가드의 연속회화와 연속판화
: (69쪽) “관심을 가져야 하는 부분은 그가 연쇄적인 공간을 통해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이자, 텍스트 없는 이미지 서사 방식이다. 이야기건, 또는 그것을 담고 있는 표현형식의 서사이건, 이 모두는 시간의 흐름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 공간예술로서의 회화가, 연쇄되는 것만으로 시간 예술화할 수 있는 것일까. 단지 이야깃거리를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단 말인가.”
2. 루돌프 퇴퍼의 “판화 이야기”와 에피날 이미지
: <반항아 샤를>이 왜 만화가 될 수 없는지를 논한 부분이 인쇄 매체 조건을 제외하고는 먼저 제시했던 조건에 해당하는지 다소 의문이 든다.(84쪽)
5장. 만화의 탄생
‘패널삽화’로서의/2. 최초의 다칸만화로서의 「옐로 키드」
: 다칸만화와 패널삽화를 구분한 채 옐로 키드의 변천 과정을 통시적으로 접근하며 이것이 어떻게 (다칸)만화가 되어갔는지를 분석하고 있다. 이미지를 가져다 놓고 논의를 전개하는 요령을 쌓기 위해 참고할 필요가 있고, 옐로 키드가 '옐로'가 되기까지의 과정 또한 색의 측면에서 참고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최근 웹툰에서의 색을 논함에 있어서 만약 아주 멀리까지 가야 한다면 색이란 것이 정착하고 의미를 갖기까지의 과정을 앞에서 들춰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접근일 것 같다. (『만화의 이해』(맥클라우드) 색 챕터 참고)
6장. 만화의 특성
연쇄적 칸의 상호의존성
: 엄밀한 의미에서(역사적) 정의를 성립(4개 조건)한 뒤 이것이 완전히 받아들여졌다는 전제하에 다시 만화의 범주를 넓히고자 한다. (경계를 분명히 설정해야 넘나들 수도 있다.)
(115쪽) “이 양면 페이지는 만화가 글자 없이도 읽을 수 있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달리 말하면, 만화가 탄생한 이후 등장인물의 움직임이나 감정을 문자 없이 이미지만으로 보여줄 수 있는 관습이 많이 만들어졌다는 의미이다.”
2. 무동(無動)과 무성(無聲)
: 만화를 영상물과 비교하면서 만화는 ‘자율적 서사물’로, 동영상은 ‘강제적 서사물’로 분류했다. 만화 읽기 속도의 자율성을 논하면서, 그 때문에 타인과 동시에 향유할 수 있는 표현형식이 아니라는 지적도 평소 하고 있던 생각을 정리해주는 듯해 반가웠다. 움직임이 없기 때문에 자율성을 갖는다는 것.
무성에 관한 논의는 나 역시 이번에 <고래별>(나윤희, 네이버웹툰)에 관해 논하면서 ‘목소리를 잃은 인어의 이야기이기에 무언일 때 비로소 완성된다. 그리고 그것은 무성 예술인 만화이기에 가능하다’, 이런 논지로 글 쓴 바가 있기 때문에 유심히 읽었다. 흥미로운 부분은, (125쪽)
“소리가 없음으로써, 독자들은 다양한 방식의 다중발화, 여러 사람의 동시적인 발화, 생각, 또는 한 사람의 발화와 생각, 또는 한쪽의 발화와 상대편의 생각 등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들을 수 있다. 이는 장면의 몰입도를 높여줄 수도 있고, 깊이를 제공할 수 있으며. 종종 해석의 여지를 풍부하게 만들어주며, 독서의 속도를 늦추는 데도 이바지할 수 있다.” 무성의 기능을 이렇게까지 확장시킬 수 있다니 생각하지 못했고(특히 다중발화) 차후 비평을 쓸 때 이리저리 반영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7장. 테두리 선과 칸
테두리 선의 기능/2. 회화, 영화의 화면과 만화의 칸/3. 칸에 대한 접근
: 지금까지 중에 7장에 제일 어려웠다. 한 번에 알아듣긴 힘들 것 같고 몇 번 보거나 필요할 때 다시 봐야 할 듯하다. 선에 관해 이야기하는 부분이 특히나 직관적으로 와닿기 어려웠다.
칸에 관한 건 흥미로운 부분들이 있었다. 가령 '칸'과 '컷'을 구분하는 데 있어 컷에 시간성이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그렇다. 웹툰 비평을 쓸 때 나도 모르게 '컷'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그건 스크롤 중심의 웹툰에는 어쩐지 칸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아서다. 정말 시간성 때문일까? (웹툰을 논함에 있어 빠지기 어려운 부분으로 보인다. 스크롤 내림을 통한 시간감 전달은 중요한 터라 칸에 관한 논의도. 그라고 테두리(선)는 채색 중심의 웹툰을 논하기 적함한 전제일까 의문.
8장. 칸 내부의 구성요소
: 칸 내부의 구성요소를 구분한 범주 자체를 참고 및 검토할 만하다. 다만 7장도 그렇고 세부적인 내용이 너무 많아서, 이런 게 있다는 정도만 기억해둔 뒤에 그때그때 필요할 때 와서 참고해야 할 것 같다. 분석용으로도 참고할 게 많을 듯하다.
1. 등장인물군
: 주인공에 관한 설명이 굉장히 좋아서 주석을 살폈더니 <Save the Cat!>(블레이크 스나이더)이었다. 워낙 유명한 작법서라 벼르고 있긴 했는데 이 글을 보니 꼭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 배경군
: 배경에 관해서는 나 역시 평소에 이런저런 생각이 꽤 있었는데 최근 보편화되는 스케치업도 언급해주었다. 종합예술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만화의 구성 요소들이 조각조각 분리되어가는 상황이 우려되는 것이 사실이다. 1인 창작물로서의 만화가 점점 더 불가능해져가는 환경에서 만화는 1인 창작물이다, 라는 내 생각 자체가 언젠가 고루한 생각이 되어버리는 걸까? 다인 창작물로서의 만화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예술 작품으로서 1인 창작에서만 가능한 유기성이 보존되었으면 하는 욕심은 어쩔 수가 없다.
한편 159쪽에 웹툰 페이지 전체를 따온 뒤, 페이지의 오른쪽 면 전체를 할애해서 문자와 병치한 편집 방식이 눈에 띄었다. 글로 설명하니 와닿지 않는데, 말하자면 옥스퍼드 노트의 옆 날개만큼의 부분이 이미지로 채워져 있다. 만화평론을 쓰다 보면 이미지를 삽입하는 일이 내용 이전에 편집 차원에서 쉬운 일이 아니란 생각이 들고, 또 글을 쓰는 과정에서도 이미지를 삽입한 상태에서 쓰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게 상당히 다른데 이 글 같은 경우 이미지를 놓고 하나 하나 짚어가면서 설명해주는 편이다. 다만 이미지 중복을 피하기 위해 한참 앞의 이미지를 재언급한다거나 논지의 흐름(대상)이 바뀔 때 조금 이해하기 어렵기도 한데 어떤 방식의 서술과 편집이 최선일지 나 역시 고민해볼 필요가 있겠다.
3. 문자군
: 말풍선을 꼼꼼히 분석해주었고 손글씨 등 문자의 이미지성을 강조했다.
9장. 칸 연쇄의 유형과 페이지
칸 연쇄의 유형
2. 단(Strip), 페이지(page), 양면 페이지(double page)
3. 일러스트레이션 페이지
: 사실 피곤했는지 이 부분이 잘 안 읽혀서 서사 부분을 먼저 읽었고 그에 관한 질문들을 메모해뒀는데 이 장에서 많이 해결(?)되었다. 특히 이미지가 서사(이야기)와 과연 별도인가 하는 부분이 그렇다. 책은 이미지와 이야기의 상관관계를 다루며 어느 쪽이 더 주도적인지 4가지로 분류해낸다.
1, 2, 3을 포괄해 웹툰과 출판만화 사이의 독법(작법) 차이도 책을 읽으며 궁금했던 부분인데 언급되어 있다. 다만 웹툰에 대한 분석이 아주 자세하지는 않다. 특히 일러스트레이션 페이지의 기능적 측면이 웹툰에서도 발휘될 수 있는지 의구심을 드러내고 있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 나는 웹툰 역시 가능하고 선례들이 꽤 있다고 생각한다. 대부분 이야기가 시작하기 전에 서비스컷으로 제시되는 그림들이 작품의 세계관이나 인물의 특성을 반영할 때가 많고(하다 못해 옷 입는 스타일이라도 인물의 성격을 반영한다) 그러한 의도가 적었더라도 독자들이 아주 적극적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고래별>의 경우 챕터가 끝날 때마다 일러스트레이션을 제시했고 인어공주 은유를 완전히 적극적으로 담아내 작품을 응축하기도 했다.
10장. 만화서사와 연출
: 서사와 연출에 관해 용어 정리(정의)용으로 참고하면 좋을 것 같다.
1. 이야기와 서사
: (211쪽) “이야기와 서사에 대한 구분은 아주 중요하다. 이야기는 “‘자연적인’ 시간 순서로 연속되어 있는 사건의 연속”이다. 남녀가 사랑에 빠졌는데 알고 보니 적대적인 가문이더라는 서사이고, 가문들이 싸우는 것부터 시작해서 남녀가 만나는 것으로 진행되어야 이야기이다.”
평소 이야기와 서사를 말의 어감 차이 정도로만 구분했지 이렇게 생각해본 적은 없는 것 같다. 오히려 플롯 개념 때문에 서사를 순차적인 개념으로 생각했으면 했지. 하기야, 스토리는 시간 순서의 개념으로 생각했으니 그렇게 따지면 이야기가 시간순인 게 맞긴 맞다. 다만 이에 관해서는 좀 더 제대로 공부해야 할 것 같다. 이 책에서 언급한 참고문헌은 박진, <서사학과 텍스트 이론 : 토도로프에서 데리다까지>(소명출판, 2014). 한일섭, <서사의 이론 : 이야기와 서술>, (한국문화사, 2009). “이야기와 서술은 서사를 형성하는 대치되는 개념으로, 이야기는 서사의 내용이고, 서술은 서사의 형식이다. 서사는 ‘담고 있는 것’이며, 소설에서는 단어들이고 영화에서는 이미지들이다. 이에 반해 이야기는 ‘서사의 내용’이고, 서사가 ‘이야기하는 것’이다. 서사는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 즉 특정한 형식으로 서술하는 것이므로, 이야기는 한 표현형식에서 다른 표현형식으로 이동할 수 있지만 서사는 불가능하다.”
(212쪽) “독자나 관객들은 구체적이고 물질적으로 제시된, 각기 다른 소설서사, 만화서사, 영화서사를 향유하면서 이야기를 추출한다.”
2. 만화연출 – 만화서사의 실체화
: (214쪽) “국내의 만화연출에 대한 연구는 안수철이 1998년부터 시작했다. 가장 최근 저서는 2008년에 출간한 『만화연출, 나도 할 수 있다』인데, 여기서 그는 만화의 구성요소를 ‘글과 그림, 연출’로 규정한다. 무엇보다 글을 이야기와 동일시한다는 점에서 연출에 대한 이론적 접근은 한계가 뚜렷하지만, 연출의 구성요소에 대한 구분과 그 사례분석은 여전히 참조할 만하다.”
만화를 글과 그림으로 나누고 글을 이야기와 동일시하게 되는 건 나도 곧잘 저지르는 실수인 것 같은데, 정말로 그렇게 생각해서라기보다는 마땅한 표현을 찾지 못해서인 것 같다. 이야기와 그림이라고 표현하면 말의 균형도 맞지 않는 느낌일뿐더러, (이 책의 경우 이야기를 시간을 따르는 자연적 상태의 것으로 전제하고 있지만 서사와 같은 의미로 생각한다면) 그 내용적 측면과 이미지가 따로 떼고 볼 수 있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여전히 있다. 내용과 그림, 이런 식으로 나눈다고 했을 때 만화만의 서사라는 것이 고유해서 사실은 그 내용 안에 그림이나 그람과의 유기성의 영향이 일부 들어가 있는 건 아닐까 하는.
(215쪽) “이처럼 칸 내부를 조율하면서 동시적으로 다른 칸들을 페이지 속에, 또는 화면 속에 시나리오적 측면과 시각적 측면을 고려하면서 배치하는 것이 만화연출이다. 같은 시나리오에 기반해도 작가에 따라 얼마든지 다르게 연출할 수 있고, 연출에 따라 독자의 흥미를 끌거나 반감시킬 수 있(216)다. 연출이 얼마나 독특한가, 그리고 작품세계의 분위기를 제시하는 데 적절한가가 작품의 수준을 결정한다.” (최근 생산되는 노블코믹스에 관해 이야기할 때 참고해볼 수 있을 것 같다.)
독자의 읽기에 관해, 흘끗 보는 순간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는데 양면의 페이지에 기반한 출판만화에는 해당하는 말이지만 웹툰에는 적용하기 어려운 논의다.
(217쪽) “독자는 읽기 전에 먼저 본다. 따라서 흘끗 본 것만으로 그 페이지가 다 해석되어 버린다면, 흥미를 잃어버린다. 본 것만으로 이해가 되지 않고, 문자까지 읽어야만 이해가 되게끔 배치해야 한다. 또한, 그림이 문자의 내용을 다시 보여주는 반복에 불과하다면 그 역시 흥미가 소실된다. 페터스가 페이지마다 매력적인 칸이 있다면 가장 이상적이라고 한 반면, 오사무는 ”상자마다 뚜렷한 인상을 남기는 이미지가 꼭 들어가도록 신경써야 한다“라고 언급하고 있다. 상자는 일본에서 통용하는 용어로, 신 또는 시퀀스라고 이해하면 된다.”
3. 만화연출 읽기
: 이 책 전체를 통과하는 장점이기도 한데, 다양한 시대와 국적의 만화를 다루고 있음이다. 다만 연출 분석은 내가 보지 않은 작품의 경우 맥락을 몰라서인지 읽어도 이해가 잘 가지 않는 부분들이 있었다. 아마 내 글도 그럴 거라고 생각한다. 이미지 분석을 하는 텍스트가 어떻게 하면 긴밀하게 붙어 잘 모르는 사람에게도 효과적으로 전달될 수 있을지 계속 고민이 필요하다. 또한 앵글을 잡는 명칭이라든지, 영화 분야를 비롯한 각종 전문용어들이 분석의 과정에서 활용되는데 모르는 용어가 많아서 어려웠다. 나는 비평을 쓸 때 정말 아는 것이 없어 맨몸으로 부딪히는 편이고 그래서 한 단어면 설명할 걸 몇 줄씩 끌고 갈 때도 허다하며, 부득이하게 사용하는 비유가 과잉이 될 때도 잦다. 그렇지만 명쾌하게 전문용어를 사용할 경우에도 만약 글의 독자가 그걸 모르면 결코 ‘효율적’이라 할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11장. 만화의 연극성 (1. 시선 전환의 필요성 / 2. 연극성과 그 장치들 – 독자의 활발한 활동을 지향하는 장치 / 3. 연극성의 두 번째 장치 – 독자에게 수동적이라는 환영을 불러일으키는 장치)
12. 만화읽기의 특성 (1. 만화읽기의 구성요소 / 2. 읽기의 환경과 독자의 성향 / 3. 만화읽기와 ‘상상적 장면’의 구축)
: 1장은 말하기가 아닌 보여주기로서의 만화를 설명하기 위해 '연극성' 개념을 가져온 장이었다.
개인적으로 흥미가 가는 부분은 12장. 그간 만화 읽기(넓게는 독서)에 있어 독자의 존재를 어떻게 바라보고 연구 및 분석에 어떻게 반영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해왔는데 그 부분에 대한 출발점들이 정리되어 있다.
(256쪽) “텍스트는 읽기의 바탕이자 근거이며 출발점이자 종착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텍스트 외에도 텍스트의 편집물성, 읽기의 환경, 구체적인 독자의 성향, 이 세 가지 요소의 중요성에 대해 인식해야 한다. 텍스트의 성격이 같다고 해도, 다른 세 가지 요소 중 하나라도 달라지면 독서행위의 내용과 방식이 달라지며 결국 작품에 대한 판단도 달라진다. 이러한 관점은 왜 같은 만화 텍스트가 각기 다른 반응을 일으키는지를 이해하도록 도와주며, 텍스트 독해에 텍스트 이외의 다른 요소가 간섭한다는 것을 인정하게 만들어준다. 특히 후자는 만화라는 표현형식이 탄생할 때부터 밀착했던 종이라는 지지대를 떠나 ‘디지털’이라는 새로운 지지대와 만나고 있는 웹툰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물론 네 가지 요소가 모두 같은 강도로 독해에 영향을 끼치지는 않는다. 텍스트의 성격, 그리고 독자의 성향이 다른 두 요소보다 훨씬 더 강한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다.”
마지막 '상상적 장면' 부분은 크게 공감했는데 나의 경우 이게 비평 쓸 때의 큰 어려움으로 다가온다. 내가 본 장면을 남들도 그렇게 봤을지 알 수 없고 그렇다 하더라도 언어를 통해 어떻게 손실 없이 전달하는가 하는 문제. 최근에 비평을 쓰면서 놀란 건, 내가 스크롤의 흐름을 따라 분석한 부분에 사후적으로 이미지를 삽입하려고 보니 기억과 너무 달라 결국 넣지 못한 경험이다. 웹툰은 거의 영상에 준하는 플로우를 만들어내기도 하는데, 컷(이 책에서는 칸과 컷을 시간성을 기준으로 구분하고 있는데 그런 면에서 웹툰은 컷이라는 표현이 정확할 때도 있는 것 같다)을 자르면 일순 정지되어버리는 것이다. 마치 메두사의 얼굴을 본 것처럼 순식간에!
다 읽고
: 여튼간에, 드디어 책 한 권을 다 읽었고. 종일 읽지 못한 탓도 있지만 3일이나 걸려서 조금 당황했다(원래 읽는 거 느린데 요즘 책 안 읽어서 잊고 있었음). 전반부 개념과 역사 부분이 이해하기 좀 더 쉬웠고, 후반부 구성 요소 관해서는 차후 참고할 일이 많을 것 같다. 대강 어떤 내용들이 들어가 있는지 파악해두고 나중에 필요할 때마다 찾아오면 될 듯.
그간 고민해오던 것들을 개괄하는 책이었고 늘 곤란했던 단어 사용을, 정답을 제시하는 건 당연 아니지만 내가 써오던 것과 견주어볼 수 있어 좋았다. 다루고 있는 작품도 시대, 장르, 형식 등이 다양했고. 만화 이론서의 활용이 확실히 한국의 논문들과 달리 외국 이론이 많았는데 많은 부분 프랑스 이론서라 이걸 내가 접근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한국 번역본/한국 이론서만으로는 역시 부족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당장이 아니더라도 서서히 접근해가야 할 것이다.
'공부 좀 해..'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타임슬립] 작가와 독자와의 거리? (1) | 2021.03.27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