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 수 있어 기뻤다.
마음에 드는 글을 쓰고 난 뒤 나는 그런 말을 뱉곤 한다.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오랜만에 먼지 쌓인 블로그에 들어오니, 너무 오랜만인데도 글들이 바래지 않고 나를 기다려주고 있었다.
청탁받아 썼던 글들 말고 혼자 끼적인 글들을 하나하나 읽어봤다.
재밌고, 아늑하고, 부드럽고... 더 없어 아쉽다. ㅋㅋㅋ
수줍은 말이지만 사실 나는 내 글을 좋아한다.
그냥도 아니고 많이 좋아하는 것 같다.
-
언젠가 가까운 지인이 물었다.
"Y씨는 Y씨를 사랑하세요?"
고민도 않고 대답이 나왔다.
"저희 그런 거 하는 사이 아니에요."
지금도 난 그때 내 대답이 더할 나위 없이 정확했다 생각한다.
자기 자신을 사랑한다, 미워한다-
흔한 명제이지만 나는 내가 난데, 내가 나랑 어떠한 관계를 맺고 감정을 주고받는다는 게 그다지 와닿지 않는다. 내가 난데... 나랑?
그러고보니 자기 자신에게 말을 거는 사람들도 있다던데... 그런 사람들은 자신을 애/증하는 걸까?
나는 나를 1인칭이나 3인칭으로 바라보는 것에는 익숙하지만 2인칭으로 바라보는 건 상상하기 어렵다.
그보다는, 굳이 따지자면 운전(?)에 가까운 느낌일까. 면허는 없지만..
내 어떤 성향이 상황(인생)을 운용해나가는 데 성가시거나 편리하다고 느낄 때는 많다.
그렇지만 좀 더 감정이 실릴 때도, 나는 내게 애증이 아니라 호오를 느낀다.
-
그리고 나는 내가 생활하는 방식, 내 생김새, 그 외 생각보다 많은 것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질투나 후회, 부끄럼을 엄청나게 많이 느끼고, 지치지도 않고 이런 감정을 느끼는 성격 역시 좋아하기 어렵다.
고치려고도 해봤지만 잘 되지 않았고, 슬슬 수긍하고 체념하고 인정해야 하는 때가 온 것 같기도 하다. 그냥 그렇게 생겨먹었다는 것을.
그런 내가 내 글은 좋아한다.
내 안에서 나오는 이야기, 그 이야기가 나오는 방식까지도 좋아한다.
나를 이루는 구성 요소 하나하나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으면서, 그것들이 모이고 섞여서 나오는 이야기는 좋아한다는 게 참 이상하지. 근데 그렇다.
오랜만에 블로그에 들어와 "쓸 수 있어 기뻤다"는 문장을 읽으며 잊고 있던 마음을 마주쳤다.
논문을 쓰는 동안 그 마음과 멀어져 있었다는 걸, 아니 그런 마음이란 게 있었다는 걸, 마주치고야 떠올린다.
마음에 드는 글을 쓰면 그 글을 쓰느라 통과해온 시간 전체를 좋은 것으로, 그래서 기뻤던 것으로 기억해버리곤 했지, 나는.
그런 식으로 한없이 단순한 스스로를 자주 바보 같다거나 한심하다고 생각하고, 그저 마음 쓰는 일 없이 냉소적으로 바라볼 때도 많았지만...
그런 단순한 꿈에서 몇 번이고 깨어나 점점 더 잠드는 것도 쉽지 않지만...
다시, 지나올 수 있어 기뻤던 시간을 통과하고 싶어진다.
쓸 수 있어 기뻤던 글.
치밀히 설계되지 않은 채 넋두리를 늘어놓듯, 도안도 목적도 없이 뜨개질을 하듯 쓰다보면... 그 문장들의 끝에서 지금은 몰랐던 것을 알게 될 것도 같은데.
아니 사실 그건 역시 또 착각이었고 그때도 모른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즐거운 마음으로 읽을거리들은 지금보다 쌓여 있을 텐데.
그러니 나는 5년 뒤에도, 몇 년 뒤에도 내가 내 글을 좋아해줬으면 좋겠다.
그때 내가 읽을 글들이 있어줬으면 좋겠다.
카테고리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