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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도 잘 써요/읽기 일기

드라마 <혼인신고서에 도장을 찍었을 뿐인데> 리뷰

by Wrinvetor 2022. 1. 28.


동명의 만화를 원작으로 하는 드라마인데, 만화도 소소하니 재밌게 본 데다 사카구치 켄타로가 눈에 띄어 봤고 내가 정말 그러는 사람이 아닌데 거의 텀 없이 완결까지 거뜬히 정주행해냈다. 오... 웬일.

잘 만든 드라마라고 잔잔히 감탄하며 감상을 시작했고, 그 페이스 그대로 결말(10화)까지 갔다. 원작을 가진 작품들은 감상 내내 원작과 비교하는 것이 시청자에게도 부담이자 즐거움인데, 이 작품은 즐거움이 컸다. 수정된 크고 작은 설정들을 보는 재미가 컸고, 그 변경 하나하나가 납득이 가 잘 만들었다 싶었다.

이를테면 남자주인공(모모세)과 그의 형 캐스팅이 그랬다. 원작에서 주인공은 (그야 순정만화니까) 미남 설정이고, 형도 성격만 상반될 뿐 외형상으로는 큰 차이가 없는데 드라마에서는 누가 봐도 동생‘만’ 잘생겼다는 설정으로, 아니 그전에 전혀 닮지도 않았다는 설정으로 바꿔 나왔다. 근데 부모님 캐스팅까지 신경을 써 아, 누가 봐도 동생은 엄마, 형은 아빠를 닮았구나 납득되게 만들어놔서 이질감은커녕 오히려 현실감이 들었다. 응응, 그런 가족들 많지. 그리고 만화와는 다른 그 모습이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는 인물의 성격과 더 잘 어울렸다고 생각한다. 남들이 볼 때 형보다 동생과 형수가 더 부부 같다는 모먼트가 이들의 조금은 아슬아슬한 관계를 보여주는 중요한 대목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점에서도 더 적절한 설정 변경이 아니었나 싶다. (<중쇄를 찍자>에서 사람 좋은 작가로 나왔던 배우(마에노 토모야)라 반가웠다. 그러고보니 여기도 켄타로가 나오네.)

그 외에도 사소한 에피소드를 좀 더 섬세하게 수정한 점들이 돋보였다. 여주인공 아키하가 계약 조항을 어기고 모모세의 금박 식기를 멋대로 사용하다 렌지에 돌렸던 장면을, 모모세가 좋아하는 떡을 함께 먹기 위해 식기를 꺼냈다는 식으로 바꾼 부분이 그렇다. 갈등을 만들고 봉합하는(모모세가 화를 내고 나중에 다시 화해하는) 과정에 있어 연결고리의 만듦새가 드라마 쪽이 더 매끄러웠다고 생각한다. 사실 원작에서의 아키하 행동이 걍 좀 경우가 없지 않나? 싶을 수 있고, 그런 사소한 것들이 하나둘 쌓여 인물에 대한 매력이 떨어지면 로맨스 작품에서 그것만큼 치명적인 게 없는데.. 그 부분까지 깔끔하게 피해간 것 같다. 오모치(고양이)도, 원작에선 중간에 데려오는 것이 하나의 에피소드인데 드라마에선 애초부터 키우고 있던 설정이라 사건이라기보단 배경에 가깝다. 그러면서도 필요할 때 사건을 만드는 데 적절히 활용했더라. (근데 어디서 그렇게 귀여운 고양이를 데려온 건지, 만화보다 만화같이 생긴 솜뭉치를 말야...) 소설가 마루조노와의 에피소드 역시 단일 에피소드로 소진하기보다 여러 타이밍에 분산되어 있었는데, 10회밖에 안 되는 드라마에는 이쪽이 더 걸맞겠다 싶었다. 사건의 진폭도 더 극적이었고.

주변 인물들 또한 더 풍성해졌다. 각각의 인물이 자기만의 이야기를 크고 작게 갖고 있어 단순히 조연으로 소진된다는 느낌이 없다. 아이돌을 좋아하는 회사 동료의 사정에 미하루를 외사랑하는 모모세를 빗댄 건 원작에서도 나왔던 거지만, 거기서 더 나아가 두 주인공의 회사 동료들과 아키하의 할머니, 데스크의 마미야 등 조연들의 비중이 상당해 주인공과 여러 형태로 얽혀 든다. 얄미운 인물들이 꽤 나오기도 하는데, 그런 인물들까지 결국은 맨틀까지 삽질하는 두 주인공(^.T)을 위해 끝의 끝까지 도움을 준다. 끝까지 보면 미움 가는 인물이 없다.

아키하의 할머니가 특히나 좋았다. ‘너네 이혼이라도 했냐’는 추측이 ‘술집을 운영하다 보면 그런 일쯤이야 흔하다’는 말로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이어지는 대화가 맘에 들었기 때문이다. 사실 세상에는 경험 많고 담대한 할머니가 정말 많은데 아무래도 매체에선 아직 많이 그려지지 않으니까. 더욱이 위장 부부가 됨으로써 내심 손녀의 결혼을 바라고 있던 할머니를 만족시키는 데서 출발하는 드라마에서 볼 줄은 몰랐기에 더 반가웠던 것 같다.

처음에는 생각 없이 킬링타임용으로 보기 시작했지만 나중에는 관계에 대해 꽤 이런저런 진지한 고민들을 전해주는 드라마라 생각됐다. 특히나 부부 관계, 가족의 형태가 어떤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가볍게 마음에 안착시켜주는 작품이었다. 아내에게 이혼을 당한 채 사실혼 관계로 살아가는 아키하네 사장 이야기가 꽤 비중 있게 다뤄졌는데, 단지 결혼과 이혼으로 고민하는 두 주인공에게 힌트를 주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그 외 꼭 나올 필요는 없지만 나와서 좋은 대목들이 꽤 있었다. 결혼으로 자기 생활을 포기해야 했던 아내에 대한 뒤늦은 깨달음이나 서류와 제도에는 담기지 않는 관계를 위한 이해와 노력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 그 부분이 ‘혼인신고서에 도장을 찍었을 뿐인데’라는 제목의 뒷말을 완성해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 같고. ‘다양한 부부(관계)’가 있으니 (놀라울 정도로 마지막까지 헤매던 역대급 삽질 커플=)주인공 역시 자기들 나름대로 해나가면 된다고 결심하는 결말. 그런 결말에 자연스럽게 도달한 데는, 모자이크처럼 자기 자리를 충실히 채워준 조연들 덕이 큰 것 같다. 갠적으로 마음에 안 드는 거라곤 유이토의 마지막뿐…(야, 너 기다린다며 임마.)

내가 너무 원작이랑 비교하면서 드라마 칭찬을 잔뜩 해놨는데, 원작을 압도한다 뭐 이런 의도는 아니었다. 만화와 드라마의 문법은 꽤 많이 다른데, 그걸 충분히 숙지하고 솜씨 좋게 옷을 갈아 입었기에 후히 평가하고 싶었던 것뿐. 손바닥보다 조금 큰 책장에서 조잘거리던 이야기가, 50분(x10) 가량의 영상이 되어 송출되려면 정비할 것이 많았을 테다. 몸피를 키우기 위해 사건도 부풀리고 인물도 늘려야 하고, 적당히 규격화된 2D 그림이 아닌 실제 사람들의 몸을 빌려 전달되는 이야기이니 사건과 대사, 감정 표현에 요구되는 현실감의 무게도 더 무거워진다. 기우뚱 넘어지는 작품이 꽤 많은데, 적당히 노련하고 적당히 귀엽게 소화해냈다. 그리고 사실 내가 정발본을, 것도 e북으로만 보다보니 만화 진도가 느린데, 내가 드라마 몫으로 돌린 줄거리나 주제 의식에 대한 칭찬이 만화의 몫이었을 수도. 그건 차차 확인하기로 하고.

여튼, 형수를 좋아하는 남자주인공.. 설정이 거북하지만 않다면(난 로맨스 만화에서 그쯤이야 뭐? 했지만 그런 기준은 워낙 주관적인 영역이니까. 나도 괜히 못 보겠는 것들이 있다.) 만화도 드라마도 추천한다. 연애는 못 하고 실컷 삽질하는 거(특히 남자 쪽이) 좋아하는 사람한테는 한 번 더 추천.




덧1.
그나저나 사카구치 켄타로 캐스팅을 결정한 분은 드라마도 잘 됐던데 성과급은 넉넉히 받으셨는지? 원작 캐릭터가 좀 냉한 인상이라 의외다 싶었는데, 고지식하면서도 허술하고 정직한, 그러면서도 주인공이 반할 수밖에 없는 매력적인 캐릭터를 희멀건한 얼굴로 잘도 소화해주었다. 켄타로 팬들이 지르는 환호성이 이곳까지 들리는 듯했다. (근데 켄타로 달리기 너무 못하는 것 같아.. 심장이 터져라 전력질주하는데 왜 몇 미터 못 가는 거야. 겁나 급한 상황인데..ㅋㅋㅠㅠ 동정심을 유발하는 거라면 성공한 셈이지만.) 물론 세이노 나나도 너무나 매력적이었다.



덧2.
드라마 OST와 함께 Aimyon이란 가수를 알게 된 것도 또 하나의 수확. 다 보고나서 생각해보니 드라마에 BGM으로 이 노래만 쓰인 것 같은데 일드 특인지? 단독으로 자주 나왔는데도 질리지 않았다. 요즘도 자주 듣는 중.




(22.01.16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