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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만화] 마음의 숙제가 버거운 밤에

by Wrinvetor 2021. 1. 18.

마음의 숙제가 버거운 밤에
(고아라, <마음의 숙제> - 만화 잡지 [지금, 만화] 8호 에세이리뷰)

 
초등학교 동창인 K에 관해서라면 함께 과학실 청소 담당이었다는 것과 당시 내가 열을 올리던 온라인 게임을 그 애도 하고 있었다는 것 말고는 기억나는 것이 없다. 다만 몬스터를 죽이고 레벨 업을 하는 것이 동력인 게임에 접속해서는 필드를 이동하며 ‘여행 중’이라 쪽지를 보내온 장면이 이상할 정도로 오래 마음에 남아 있다. 바다를 감상하고 있다는 K에게, 어디가 그렇게 좋은데? 나도 같이 다녀도 될까? 그렇게 물었다면 좋았을 텐데. 당시의 나는 낭만이라고는 조금도 없어서 던전에서 몬스터를 잡는 데 바빴던 것 같다.
 
이런 장면이 기분 좋은 추억이 아니라 끈질기게 따라붙는 작은 후회로 남은 것은 아마도 내가 지금은 그의 안위를 전혀 알 수 없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때로부터 한참이 지나서야 나는 그렇게 무해한 방식으로 독특할 수 있던 K가 지금은 어떤 사람으로 자랐는지 알고 싶어졌다. 살면서 K와 같은 성을 가진 사람을 한 번도 본 적이 없기에 SNS를 조금만 뒤지면 얼마든 찾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어디를 뒤져도 K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웹상에 흔적을 남기는 것은 께름칙한 일일지도 모른다. 나 같은 인간의 염탐 대상이 될 수 있으니까. 하지만 때때로 누군가 여전히 거기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며 묘한 안도감을 느끼는 나로선 고맙고 미안하게도 먼 곳의 소식이 절실하다. K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은 내가 그의 안위를 확인할 방도가 없다는 뜻이었다.
 
그 아이 무사한 걸까. <마음의 숙제>를 읽으며 K를 떠올린 것은 아마도 이런 질문 때문이었을 것이다. 고1 열일곱, 자신이 용기를 내 고백한 그 날을 기점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졌던 ‘호선’을, 생사조차 알 수 없어 마음을 애태우며 기다려온 ‘이경’이 13년간 되뇌었을 질문. 이경이 서른 살이 되어서야 호선을 만났을 때, 그를 만나자마자 내뱉은 말은 “살아 있었어. 다행이다. 살아 있음 된 거야. 그럼 된 거야.”였다. 그 말을 보며 내게도 그런 안도감에 대한 바람이 있음을 깨달았다. 더는 볼 수 없는 이의 안위를 무력하게 걱정해야 하는 이 거추장스러운 마음의 숙제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다는 바람이었다.
 
하지만 호선의 생사를 확인한 것도 잠시 이경은 그가 결코 무사하지 못함을 알게 된다. 호선은 종적을 감춘 열일곱의 그즈음 원치 않게 뱀파이어가 되어 뱀파이어의 마을에서 살아가고 있었는데 인간으로서의 삶이 불가하게 된 그날로부터 자신의 새로운 삶을 조금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피로 허기를 채우고 더는 햇빛을 볼 수 없는, “어떤 가능성, 추억, 성장, 그 모든 걸 한순간에” 잃은 삶을 ‘지옥’이라 느끼며 13년을 지내온 것이다. 호선은 다정하던 옛 모습을 지운 채 너무도 차가운 이가 되었고 그를 걱정해온 이경을 단칼에 밀어낸다.
 
호선이 이경을 밀어낼 때 “네가 뭔데”라고 말한 것처럼 K의 안위에 대한 내 걱정이 사실은 터무니없이 주제넘은 일임을 알고 있다. 아니, 이경은 애태우고 야속해 할 자격이 있어 보인다. 하필 자신이 고백한 뒤에 호선이 사라짐으로써 호선의 실종이 마치 이경에게 책임이라도 있는 것처럼 조롱받아야 했고, 고백에 대한 대답도 듣지 못했으니까. 오히려 이상한 것은 나의 난데없고 끝 간 데 없는 오지랖일 것이다. 나야말로, 내가 뭔데 K를 걱정하는 것일까.
 
‘조롱’이라는 말로 요약했지만 사실 열일곱의 이경이 거쳐온 시절은 훨씬 중층적으로 가혹한 시간이었다. 이경을 놀리던 여럿 중에서도 유독 심하게 굴었던 ‘구원주’가 호선을 가장해 이경을 찾는 편지를 건넸고, 호선이라 믿은(어쩌면 믿고 싶었던) 이경이 한밤중에 찾아간 곳에서 괴한들을 만났기 때문이다. 구원주의 ‘가벼운 장난’에 연쇄해 이경이 그런 일을 당한 것을 단지 불운이나 우연으로 치부하기엔 그때부터 지금까지 이경이 견뎌온 현실이 너무나 서슬 퍼렇다. 호선이 실종됨으로써 이경이 겪을 충격과 상처를 헤아리기는커녕 순정한 마음을 모독하던 그 무심한 폭력이 한밤중 이경을 위협했던 물리적 폭력과 정말로 아무 상관이 없을까. 호선이 뱀파이어가 된 것 역시 사실은 어떤 이의 악의로 납치되고 칼에 찔려 불가피하게 살아남기 위해서였음을 생각할 때, 아니라고 단언은 못 할 것 같다.
 
우리가 나쁜 일들을 겪을 때 그것은 특별히 불운한 것이 아니고 오히려 그 모든 나쁜 일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운이 좋은 것이라는 생각이 언젠가부터 든다. 그리고 그렇게까지 ‘운이 좋은’ 사람을 나는 아직 만나보지 못했다. 부족한 예산으로 욕심껏 집을 보러 다니던 이경에게 냉혹한 “세상의 시세”를 말하던 중개업자의 충고는 불필요한 것이었다. 조롱과 폭력, 냉소와 멸시가 도처에 도사리고 있다는 것, 최소한으로 살아남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 언제나 감당할 수 있는 것보다 넘쳐 움츠러들 수밖에 없다는 것.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가 그런 곳이라는 것을 모를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내가 K의 안위를 절실하게 궁금해하는 것은 주제넘은 일일지 몰라도 근거 있는 걱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세상에서 다정함을 유지하기란 솔직히 힘에 부치는 일이다. 차가워진 호선에게 상처받은 이경 또한 다른 한편으로는 낯선 뱀파이어 이웃들에게 가차 없이 무례하게 구는 모습을 보인다. 이경과 호선뿐만 아니라 <마음의 숙제>에 나오는 모든 인물이 그렇다. 물리적 상처를 입을 일 없는 뱀파이어들조차 건네진 진심이 상처로 돌아올까 봐 두려워한다. 뒷걸음질 치기도 하고 하지 않았다면 좋을 말들을 뱉는다. 어쩌면 살아가는 일이 그 자체로 자꾸만 늘어가는 ‘숙제’처럼 느껴지는 것은 사실은 우리 모두 이 상처 많은 세상에 얼마간 혐의를 갖기 때문이 아닐까. 서툴고 무심한 동작들이 누군가에게 영영 잊히지 않을 상처를 입혔을지도 모른다. 고의가 아니었다고, 두려움 때문이었다고 해도 받은 상처가 없던 일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이경이 구원주와 재회하는 과정에는 이에 대한 분명한 자각이 담겨 있다. ‘적당히’ 사과를 건네며 이제는 친하게 지내자 제안하는 구원주를 이경은 끝의 끝까지 용서하지 않는다. 그가 자신의 ‘가벼운 장난’이 아닌 이경의 상처를 생각했다면 차라리 말을 거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 쪽이 나았을 것이다. 이경은 웃어주지 않고 되받아치는 말을 그치지 않고 힘껏 미워하는 일을 계속하면서 그 일을 없던 것으로 희석하지 않음으로써 지독하게 괴롭던 한 시절의 존엄을 최소한으로나마 지켜낸다.
 
나아가 자신의 환영회에서 모두를 기다리게 만든 것이 사실은 모질고 무심한 일이었음을 뒤늦게, 그러나 여러 차례에 걸쳐 진심으로 뉘우치고 미안해하는 일의 배면에도 하염없이 호선을 기다려야 했던 13년의 시절이 놓여 있다. 술에 취하면 이렇게 술을 마실 수 있게 자란 자신과 달리 성인이 되지 못했을지도 모르는 호선을 애타게 부르거나 가족의 안위를 이용한 전형적인 보이스피싱에 유난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날들로 채워진 기나긴 시절이. 그것은 “보이지 않는 돌부리에 매번 발이 걸려 매끄럽지 않고 상식을 넘어선 반응”을 연발하는 트라우마의 시간이었지만, 동시에 자신의 것처럼 타인의 상처에 예민하게끔 단련되는 시간이기도 했던 것이다.
 
쑥스러워하며 무심코 진심을 부정하는 이경에게 ‘세정’은 말한다. “사람 참 나약해”, “상처받는 게 싫어서 틈만 나면 정 떼려고 하고 진심을 보여줘도 믿지 않고, 예전엔 그런 사람들이 야속하다고 느꼈는데 지금은 가엽고… 귀여워.” 경계심으로 날을 세운 태도에서 여린 속내를 읽어내는 세정의 시선으로부터 한없는 다정함을 느낀다. 세상 어딘가에 폭력이 멈추고 상처가 회복되는 변곡점이란 것이 드물게나마 존재한다면, 다름 아닌 이런 순간을 말하는 것 아닐까. 그것은 “솔직함이 약점이 되”는 세상이 얼마나 가혹한 것인지 경험으로 알고 있는 이경이 그럼에도 “좋아하는 일이 어렵지 않”은 곳을 꿈꾸는 순간과도 맞닿아 있다. 가혹함에 지지 않고, 거추장스러움을 감수하며, 끝내 다정함을 결심하는 순간들은 안도감을 넘어 경이로움을 느끼게 한다.
 
너무 오래돼 거의 풀기를 체념한 숙제 같은 인연과 다시 만나서 안위를 확인하고 듣지 못했던 대답을 듣고 속죄하고 서로를 위로하며 앞날을 응원하는, 그런 재회를 상상하는 일을 이제는 조금씩 놓아주고 있다. 그것은 어쩌면 상냥한 뱀파이어 이웃과 현실에서 조우하는 일만큼이나 허황된 기대일 수 있다는 것을 더디게 받아들여 가는 중이다.
 
다만 여전히 미련하지만 그래도 순정한 마음으로 이런 것들을 상상한다. K는 나와 같은 나이만큼 자라 이제는 성장이 아닌 노화에 접어들었고, 남들 다 하는 그 흔한 SNS 하나 하지 않을 만큼 지금도 고집스레 독특한 모습일 것이다. 완전히 무해할 수는 없지만 타인과 자신에게 아주 유해하지는 않은 하루를 보냈을 것이다. 악의를 누르고 다정함을 발휘하기 위해 애썼을 것이며, 그러느라 지친 몸과 마음을 이끌고 집에 돌아와 마스크를 벗고 꼼꼼히 손을 씻은 뒤 밝고 따뜻한 방 안에서 하루를 마무리할 것이다. 확인할 수 없어도, 진심으로 믿고 기원한다. 동 터오는 새벽이 여전히 K에게도 있을 거라고.
 

(20.10.10 씀)

 

고아라, &lt;마음의 숙제&gt;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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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만화 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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